엄마 라는 단어에 초연 할 수 있는 딸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앞에 몇 장을 읽고서 바로 깨달았다, 아 나는 이 책에 객관적일 수 없겠구나.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의 제목, “한 여자”는 엄마다. 딸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기억하는 엄마의 일생, 그리고 말년의 치매와 죽음의 단상들을 담고 있다.
한여자 줄거리
어머니가 4월 7일에 돌아가셨다. 로 시작하는 이 글은 돌아가신 엄마의 장례를 치르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후 작가는 어머니를 잃은 마음을 조금씩 추스르고 드디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첫 문장을 적어낸다. 그리고 담담히 그녀 어머니의 생애를 글로서 되돌아본다. 에노 아르노는 그렇게 어머니의 인생을 그려내며, 죽음을 애도하고 더이상 어머니에게 가닿지 못할 그리움과 사랑을 이 작품으로 띄워보낸것이 아닐까.

어려운 시대에 여공으로 자라난 어머니는 사회적 신분 상승과 지적으로 우아한 삶을 살길 바라는 욕구가 컸고, 이는 우리나라의 많은 다른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본인이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해 줄 딸에 대한 애정 과잉과 집착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개인적 경험들과 어머니에 대한 단상들을 시대적 상황과 환경을 바탕으로 객관화하여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치매가 시작되고 악화된다. 인생에 가장 중요하고 유일했던 여자인 어머니가 점점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과정. 보고 싶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어머니의 모습과 대면해야 하는 하루 하루가 묘사되고 글은 시작과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죽음으로 끝나게 된다


이 책의 마지막 문단은 다음과 같다.
앞으로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여자가 된 지금의 나와 아이였던 과거의 나를 이어 줬던 것은 바로 어머니, 그녀의 말, 그녀의 손, 그녀의 몸짓, 그녀만의 웃는 방식, 걷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잃어버렸다
저자 - 아니 에르노
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여성 작가 아니 에르노. 허구가 아닌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자전적 소설들을 집필했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들은 그녀의 삶의 단편들이고, 결국 모두 어떤 지점에선 서로 맞닿아 있다.
아니 에르노의 책을 처음 읽어 보는데, 처음에는 읽다가 친구에게 투덜거렸을 정도로 문체가 낯설었다.
~했다 로 서술되는 문장 중간 갑자기 ~했음으로 끝난다던지 문장이 아닌 단어가 나열된다든지 말미가 수시로 바뀌는데, 이게 불어의 특정한 어떤 맛을 살려낸 문장들인지, 역자의 번역 스타일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초반엔 글이 매끄럽게 읽히지 않고, 불편했다.
하지만 점차 감정 이입이 되면서 이런 부분들이 사소하게 느껴지고, 더이상 거슬리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선호하는 문체는 아닌 것 같다). 사실 뻔하다면 뻔한 자전적 경험을 담은 글이 그렇게까지 와닿았던 것이 엄마라는 좋은 글감 때문만일수는 없다. 그녀의 적나라하지만 절제된 문장에 마음을 두드리는 세밀함과 힘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시대와 국가가 한참 동떨어져 있는데 엄마와 딸의 관계와 집착, 사랑의 모습이 이토록 동질성을 띄는 걸 보면 동물의 모성본능이란게 참 대단하구나 싶다.
이제 매 해 엄마가 나이들어가시는게 느껴진다. 내가 덧없이 나이만 먹고 있구나 하는 서러움도 종종 느끼지만 단언컨데 그보다 엄마가 나이들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함이 더 크다. 첫째딸과 엄마는 서로를 동일시한다고들 하는데 유대감 깊은 엄마와 딸 관계로 성장해온 나는 그 점에 매우 동의한다. 엄마가 죽는다는건 정말로 나와 세상의 연결고리를 하나 잃는 것일테다. 왠지 이 책은 나중에 한번 더 읽고싶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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